아마 90년대 초반이었을까, 의과대학 다니는 초짜 대학생이, “저, 오늘 서편제 보러 갑니다.” 하면서 만날 약속을 취소한 적이 있다. 당시에 인터넷이 있었나, 속으로 ‘서편제’가 뭐야 하면서, “뭐, 편지인가..”하며 넘겼는데, 후에 알고 보니 한국의 창이었다. 초짜 대학생이 한국 국악에 대한 영화를 보러 간다고… 고 놈 참 대견하네. 그리고 한 참 후에 TV로 서편제를 보았는데, 별 감동 혹은 감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창 (국악)에는 아마도 문외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그 서편제를 또 한 번 보았는데, 어, 이번에는 그 소리에 어떤 느낌이 다가왔다. 그것은 아마도, 창을 부른 여인의 애절하고 한 맺힌 삶으로부터 온 것이리라. 소리-사람의 말, 음악 그리고 글이 인간사 한과 눈물과 슬픔을 전달할 수 있듯이,(나이 30 이전에 이런 소리를 찾아 다녔다. 그 후 바뀌었다.) 소리는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고 심지어 운명까지 바꾸는 대단한 힘이 있다.
이제마는 그의 저서 동의수세보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의 귀는 善聲(선성)을 좋아한다.”선성’이 무엇인가? 좋은 소리, 선한 소리, 아름다운 소리, 세상을 밝히는 소리, 죽어가는 사람을 소생하게 하는 소리, 혹은 진리의 소리 등등으로 풀이를 할 수 있지만 그냥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감동하게 하는 소리라고 하면 될 것이다.
아무튼 사람의 귀는 선성을 좋아한다는 그의 시각이 사뭇 놀랍고 감탄스럽고 그를 존경하게 한다. 사람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일 까. 소리에 대해서 여러 사람의 견해가 있지만 공자 역시 ‘소리’에 대한 고견을 남기고 있다. 사람의 삶의 도리를 역설한 공자는, 그의 仁禮(인예) 사상의 종결로 藝(예:아름답고 조화를 이루는 음악 혹은 소리)를 논한다.글 읽는 선비가 음악을 좋아하랴 하겠지만, 평생 도에 뜻을 둔 그는 실상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고 사랑한 풍류가 라고 스스로 자처한다. 악기에 들려지는 아름다운 소리,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 간의 균형이 잡히고(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나로 서의 일체감을 이루는 소리만 있으면 食飮(식음)이 없더라도 도에 이른 것 같고 행복하다고 했으니.
한의학은 腦(뇌)의 의학이기보다는 ‘臟腑 (장부:육장육부)’의 의학이다. 뇌에 모든 정신 작용이 있음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오장육부에 정신 혹은 감정을 이입한 것은 쉬이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한의학의 시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간에 魂(혼;넋)이 담겨 있고 비(위)에 意(의:뜻, 의지) 가 있으며 신장에는 智(지:지혜)가 서려 있다고 본다. 간이 튼튼한 사람은 혼의 힘이 강하다. 비장이 실한 사람은 판단력과 결단력이 강하며 신장의 힘이 좋은 사람에게는 지혜가 잘 나온다. 정말 그럴까. 한의학을 평생 학이요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 같은 이의 답변은 이렇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폐는 어떨까. 폐에는 魄(백:넋)이 들어 있다.(혼,백을 그냥 넋으로 이해하자.) 폐에는‘백’이 그 경락을 타고 전신을 운행한다. 무슨 넋 나간 소리 같지만 가만히 음미해보면 폐에 간직된 ‘백’의 기운이 더러는 전혀 감지가 되지 않은 체 어떤 경우는 실성한 사람 에게서나 볼 수 있을 듯하게 사람 몸을 감싸고 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정신을 담고 있는 장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마는 사람의 일곱가지 감정을 네 가지로 요약하여 喜怒哀樂(희노애락)이라 하였고 그 중 ‘哀(애)’의 감정이 폐에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체질을 태양인이라 한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서 , “폐는 惡聲(악성)을 싫어 한다” 라고 역설한다. ‘악성’이면 무슨 소리일까. 듣기 싫은 소음도 악성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을 모함하고 해하는 소리도 악성이다. 진리와 삶의 올바른 도를 거스리는 소리 그리고 음담패설도 악성임이 틀림없다. 아무튼 악성은 ‘나쁜 소리’다. 그리고 이 나쁜 소리가 폐를 상하게 한다.
자, 이 제마의 ‘소리’에 대한 개념을 종합해해보면 사람의 귀는 선성을 좋아하고 폐는 악성을 싫어한다는 것. 그의 시각은 과연 정확한 것일까. 무엇보다 그는 왜 이같이 조금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견해를 내 놓은 것일까. 그것은 이제마가 평생을 “사람은 어떻게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면서 발견하고 깨달은 올바른 양생관으로서, 나쁜 소리는 사람의 마음에 거슬려 결국 건강을 해하고 좋은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 로“건강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좋은 소리를 들어라,” 이것이 그의 양생관이다. 그는 ‘선한 (좋은) 소리’는 귀에 순응하고 (귀를 이롭게 하고) ‘악한 (나쁜) 소리’는 폐를 거슬린다 라고 말한다.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오감五感을 담당하는 이목비구耳目鼻口를 선한 것(좋은 것)으로 그리고 생명의 중추장기인 폐비간신에 선한 것(소리, 맛, 시각 그리고 냄새 등등에서)을 받아들이도록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60대 중반의 서양인 여성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몇 십년) 위장과 대장 문제로 무척 고생해 오다가, 이웃의 소개로 방문하여 태양인으로 감별되어 그에 맞게 치료를 받고 식이 를 가리면서 건강에 훨씬 진전이 나타나자, 반색이다.
필자가 체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자, 그녀는 거의 매주, 몇몇 친구와 함께(때로는 가족) nursing home을 방문하여 노래를 들려준다고 한다. “딱 맞는 일을 하시네요. 폐활량이 좋아, 기타 치고 노래 부르기에 최적이네요.”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이 일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다. 노래를 전문가처럼 잘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노래를 즐기고, 또한 nursing home의 노인들이 즐거워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
폐가 큰 태양인은 ‘애(비애, 슬픔)’의 감정이 짙어, 그런 감정을 발산하면 주위를 힘들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노래로 승화시킨다면, 본인의 건강에도 이롭고, 주위 사람들도 즐겁게 하는 유익이 있다. 큰 소리 든, 작은 소리 든,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소리 든, 잠시 즐거움을 주는 소리 든, 자신의 소리를 잘 쓰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공자가 ‘이순’을 말했다. 나이 예순에 접어 드니, 소리에 초월했다는 것. 좋은 소리, 나쁜 소리, 긍정적인 소리, 부정적인 소리. 정죄하고 무시하고 질타하는 소리, 격려하고 칭찬하고 세워주는 소리. 그 모든 소리를 초월했다고 하니, 아, 참 대단한 경지이다. 그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고 당신도 사람인데, 그가 그러했다면 나도 그러할 수 있고, 당신 역시 그러할 수 있다.
공자가 실성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이순의 경지를 꼭 이해하거나 도달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지만, 한 가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말이 이 귀에 들리든, 마음에 (너무) 상처가 되거나 자만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예순을 넘긴 필자의 바람이다.
/다니엘 한의원 (604-790-8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