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일 ThursdayContact Us

사유의 정원 산책 순서도

2026-07-02 22:51:50

도서출판 북위 49가 펴낸 예주 민완기 산문집『사유의 정원을 거닐다』 의 출판 기념회를 진행하였다. 글은 혼자 쓰는 것 같지만,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있기에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이날 모인 모두가 ‘공저자’라는 민예주 작가의 생각에 따라,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화두를 던지며 ‘사유의 정원’을 함께 산책하고자 했다. 나는 출판 기획자로 독자들 앞에 민예주 작가와 함께 섰다. “그대, 정주(定住)에 성공하였는가?”는 첫 번째 화두였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국경을 넘은 우리가 낯선 땅에 뿌리 내리기까지, 저마다의 엄혹한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기에 유목민의 DNA를 가진 우리에게 이 질문은 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다. 모호함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혼종과 경계 사이에 흔들리며 걷는 이주자의 삶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와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사유의 정원을 거닐다』는 그 마음을 스무 해 동안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인간으로서 불가피한 쓸쓸함과 근원적인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역시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설령 공간으로는 정주하지 못했을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정주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정주는 모호성과 경계성, 혼종성 바로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미래를 사는 시절도 있지만, 추억을 사는 때도 있다. 우리의 두 번째 화두는 ‘타인의 추억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글의 힘’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행복했던 순간들」을 낭독하며 독자들을 50년 전 경복고등학교 문예반의 한 장면에 초대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했던 작가는, ‘문학의 밤’에 강평자로 오셨던 미당 서정주 선생의 칭찬을 지금도 기억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소개했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의 일화가 독자의 내면에 닿아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떠올리며 미소 지어 보기를 바랐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경복고 문예반 1년 선배였던 김갑수 평론가와 김민웅 교수의 영상 축사가 더해져, 그 시절의 공기가 한층 더 생생해졌다. 자리에 오신 분 중에 문예반 추억이 있는지 묻자, “문예반 안에 있었지만, 책을 읽은 기억이 없고 예쁜 여학생들 얼굴만 보았던 기억이 난다”라고 나누어 주신 분이 있어 함께 유쾌하게 웃었다. 작가의 문장이 데려다준 각자의 지점에서 그 시간을 흠뻑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작가와 출판 기획자 그리고 독자가 함께 호흡하는 출판기념회가 되고자 했던 그 의미가 한층 더 깊어졌다. 우리의 세 번째 화두는 경계 위에 사는 이민 1세대와 1.5세대였다. 이민 1세대인 민예주 작가의 글을 이민 1.5세인 내가 엮는 과정은, 서로가 끊어 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경계인으로 내 존재를 평생 설명해야 하는 무게를 다 알지 못하는 1세대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각 세대의 짐은 다른 세대가 감히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방향이든 날카로운 화살과 판단을 버리고,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풍성해지는 길로 가는 시작일 것이다. 작가와 내가 만든 건 한 권의 책만은 아니었다. 삶에 의미를 더해가고, 책으로 꿈꿀 수 있어서 가슴이 설렜다. 국문학 전공자이자 등단한 수필가로 오랜 시간 읽고 쓰며 살아온 그의 첫 책이 지닌 뜨거움을 알기에 그의 스무 해를 담은 문장을 엮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영광이었다.

이 책을 기획하던 지난가을, 나는 작가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마음에 슬픔 한 조각이라도 있느냐고.” 한참 연배가 높은데도 권위적이지 않고 친근감을 주는 성정이라 나이 차를 잊고 여러 질문을 하곤 했다. 무엇보다 그의 글이 유쾌하고 무겁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간 그는 안색이 변했다. “흔연히 잘 생활하다가도, 일상 중에 그대로 숨이 막혀 오면서 얼어붙는 지점…빙점이 무엇이냐는 거지요?” 하며 그는 머뭇거렸다. 빙점, 나는 그곳에서 한 사람의 진가가 나온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책 안에는 그 빙점을 내어놓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온 글이 바로「 나의 빙점 이야기」 이며, 우리의 네 번째 화두였다.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빙점 하나쯤은 두고 산다. 이 글을 통해 아픈 기억이 오히려 회복의 지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

민예주 작가는 종종 내게 나침반 이야기를 했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파르르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다는 것은, 지남철이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으라고 했다. 바늘이 전율을 멈추고 한쪽에 고정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다섯 번째 화두는 ‘별과 나침반’이었다. 그는 ‘도서출판 북위 49’의 처음을 가장 먼저 듣고 지지해 주었다. 책을 마주할 때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 떨림을 격려하며 이곳까지 이끌어 주었다. 성과 없던 꿈에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펴고 책으로 길을 내어갈 수 있었다. 더불어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바늘은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마음의 떨림을 따라가며 방향을 잃지 않으려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 그 태도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출판기념회는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사유의 정원’을 가꾸는 시간이었다. 비록 경계 위에서 때로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정주를 향한 이정표를 발견해 갈 것이다.『사유의 정원을 거닐다』속 문장들이 이 책을 읽는 모든 경계인의 밤하늘에 희미한 별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글 김한나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도서출판 북위 49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