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9일 WednesdayContact Us

친구 K에게 / 이종구

2026-07-29 11:13:38

K,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캐나다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한국으로 들어갈 때보다 마음이 좀 그렇다.
몸이야 양쪽을 오갈 때마다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유난히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예전 같이 않아서인지, 다시 캐나다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밴쿠버 공항에 내려 빅토리아행 비행기를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비행기가 하늘로 떠오르고 창밖으로 푸른 바다와 섬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 이제 집으로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몇 십년을 살아온 이곳이 어느새 또 하나의 고향이 되어 있었다.
빅토리아 공항에 내려 깊은 숨을 들이 마시면, 맑은 공기가 가슴속까지 스며든다. 서울에서 맡던 공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며, 바람은 바다 냄새를 실어온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환경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도 서울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오며 기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캐나다에서 사신다니 부럽습니다.” 뜻밖의 말이었다. 나는 웃으며 “살아 보면 좋은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기사님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는 돈만 조금 모이면 서울을 떠나 남쪽 조용한 섬에서 살고 싶습니다. 도시가 너무 복잡하고 답답합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아온 그 기사는 다시 자연을 찾아 떠나고 싶어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없는 것을 그리워하며 사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젊었을 때는 편리한 도시가 좋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맑은 공기와 조용한 숲길, 햇살아래 천천히 걷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빅토리아에서 누리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 나이가 들면서 더욱 깨닫게 된다.
물론 이민생활이 늘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은행에도 가고, 병원 예약도 하고 장도 볼 수 있으니 영어가 어느정도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그 생각이 완전히 무너졌다. 주변 사람들이 동시에 크게 웃는데, 나와 아내는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고 웃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특히 “Good will Hunting”을 보았을 때에는 빠른 대사와 유머를 거의 따라가지 못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깨달았다. 언어는 단순히 단어를 아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회의 문화와 정서, 유머와 삶의 방식까지 함께 이해해야 비로서 마음이 통하고 같이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빅토리아에서 20년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나는 간이식을 받기 위해 밴쿠버로 2013년 이주하게 되었다. 지금은 나를 위시해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이민 생활의 기쁨과 외로움,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글로 남겨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거창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다음 세대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이곳 캐나다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또 오늘처럼 그냥 지나가다 세월이 무심코 나를 데리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캐나다를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두 고향 사이에서 남은 인생도 작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살아가고 싶다.